아, 야, 체해 천천히 좀 먹어, 어?
꼭 네가 나서야겠냐?
네 말대로 아무 죄가 없으면 무사히 나올 거야.
아무도 없어.
준하는 아무도 없어, 나밖에는.
아이고, 네가 간다고 무슨.
내가 지켜 줘야 된다니까 준하는!
#
허무하지?
사는 게, 별게 아닌가 봐
칠십 해를 넘게 살았는데,
이거야.
칠십 해를 넘게 살면서, 온갖 일을 다- 겪었을텐데,
결국, 사진으로만 남았어.
난 말이야.
내가 애틋해.
남들은 다 늙은 몸뚱아리,
뭐, 더 기대할 것도, 후회도, 의미없는 인생이, 뭐가 안쓰럽냐 하겠지마는,
난 내가 안쓰러워 미치겠어.
너도, 네가
네 인생이,
애틋했으면 좋겠다.
#
어딜 가려고 했던 거였어?
러시아요.
러시아?
왜?
횡단열차타고, 오로라 보러 가려고 했어요.
..혜자가 밉지 않아?
말도 없이 떠나서, 돌아온댔다가, 못 돌아온댔다가,
누구 놀리는 것도 아니고.
그리워하는 건 혼자서도 할 수 있으니까, 괜찮아요.
그리고 받은 게 많아요, 혜자한테.
그리고 할머니한테도.
...
내 인생을 끌어안고, 울어 준 사람이 처음이었어요.
그 동안 나를 괴롭게 했던 건 나를 떠난 엄마나,
때리던 아빠가 아니라, 나 스스로였어요.
평생 나라는 존재를 온전히 품지 못해서 괴로웠어요.
실수가 만든 잘못이고, 축복 없이 태어난 걸 너무 잘 알아서,
내가 너무 마음에 안들었어요 그냥.
근데,
나도 못 끌어안은 나를 끌어안고,
울어 준 사람이, 처음이었어요 그 사람이.
가.
오로라 보러, 왜 안가?
갈 수 있을까요?
가면 되지, 왜 이러고 앉아 있어, 어?
씨, 당장 가 얼른!
무브 무브 무브!
가서, 나 대신 내 몫까지 보고 와야지, 어?
나중에 다녀오면, 꼭 얘기해 줘? 얼마나 울었는지?
..꼭?
가면 할머니 생각도 많이 나겠네요.
..내 생각은 괜찮으니까,
..혜자 생각 많이 해줘.
스물다섯, 우리 혜자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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