#

 

 

 

다음달 국가 대표 평가전에 나갈 선수가, 우리 팀에서도 생겼다.

나희도.

 

네?

 

니다.

 

제가, 왜요?

 

니 등수 앞으로 두 명. 결원이 생겨 뿠다.

IMF로 어중간한 펜싱부들 폐지되면서 그만둔 선수 한 명. 가정 형편이 어려워져서 그만둔 선수 한 명.

그래 갖고, 26등인 니가, 나가게 돼 뿠다.

니가 그만두지 않았기 때문에, 기회가 와 뿠네. 축하한다.

 

축하해, 언니.

 

시대가 니를 돕는다, 나희도.

 

 

 

네 꿈을 뺏은 건 내가 아니야, 시대지.

시대가 니를 돕는다, 나희도

 

 

 

 

#

 

 

 

 

약간 센티해 보이네, 백이진 군?

 

그냥, 나는 이제 정말 어른이다, 싶어서.

 

왜?

 

갑자기 보호자가 없다는 걸 깨달았어.

그래도 내 동생한텐 꼭 돼 줄거야, 보호자.

 

슬러시 먹으러 갈까? 나 아직 갚을 돈 2천원 남았잖아!

 

갚은 걸로 해. 오늘 도와줬잖아.

 

에이, 돈은 돈으로 갚는 거고, 마음은 마음으로 갚는 거야.

내가 지금, 마음으로 갚을 기회를 줄게.

축하해 줘.

나, 운 좋게 국가 대표 평가전에 참가하게 됐어.

 

 

진짜?

큼-

축하해, 잘 됐다.

 

 

국가 대표 되는 건 아니지만, 평가전에 나간다는 거만으로도, 좀 설레.

나 처음 나가보거든.

 

넌 좀 뻔해.

 

뭐가?

 

잘할 게 보여. 넌 모르겠지만.

 

어, 전혀 모르겠어. 꼴등만 안 했으면 좋겠어.

 

두고 봐.

 

 

 

 

 

#

 

 

 

 

다칠 뻔했잖아.

넘어져서 발목이라도 나가면, 어떡할 뻔했어.

 

 

미안해.

 

너 지금 제정신이야? 얼마나 뛰어다녔길래 이 동네까지 와서 이러고 있어!

뛰어다닐 거면 운동화라도 신든가!

위험하게 슬리퍼 신고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.

 

미안해 정말.

 

안 미안해도 돼.

아빠 만났어.

 

...다행이다... 진짜 다행이다.

 

 

 

 

 

 

#

 

 

 

 

여기가 어디라고 여기까지 와서 사람을 찾아.

우리 아빠가 이 동네를 배회하고 있을 리 없잖아.

 

찾지 않으면, 찾을 수 없잖아.

어디서 찾았어?

 

터미널.

 

허... 넌 되게, 똑똑하구나. 공부 잘했다더니 정말이야.

 

그래, 넌 참 예상대로 무식하다.

 

아, 맞다.

이거.

아까 떨어뜨린 거.

나 때문에 아빠랑 못 만났다고 생각하니까, 너무 미안해서 다시는 니 얼굴 못 볼 것 같았어.

그게, 너무 무서웠어.

그럼 풀하우스 빌리러도 못 갈 거고.

 

허-

 

또 다른 대여점 찾아야 하고.

 

하-

어디 다친 덴 없어? 너 두시간이나 뛰어다녔어.

 

두 시간이나 지났구나.

큭- 웃기다. 풉.

 

웃기냐?

 

압정도 없고. 집에 어떻게 가지?

 

허-

뭐, 똑똑한 내가 해결해야지.

넌 끽해야, 비닐봉지 신고 가는 생각밖에 못 할 거잖아.

 

어떻게 알았지?

 

가방에 넣어.

 

그러니까.

 

 

 

#

 

 

왼발, 왼발, 왼발.

 

아니, 아니, 이게, 왜..

 

아, 왼발, 왼발, 왼발..

야, 왼, 왼발이라고!

 

아니, 왼발을..!

 

하-

 

아 나한테 왼발인 줄 알았지!!

 

 

 

너 지금 나, 나한테 짜증 낸 거야?

둘이 있을 때 행복하기로 한 거 아니었어?

 

짜증 낸 게 아니라.. 항의한 거거든!!

그리고 나 지금 겨드랑이 찢어질 거 같아.

 

집에 안 갈 거야?

 

갈 고얌..

 

가자, 자.

자, 왼발.

왼발, 왼발.

 

오른발, 오른발, 오른발.

 

그렇지, 그렇지, 그렇지!

 

오른발!

 

그렇지!

 

 

 

 

 

 

 

#

 

 

 

라이더37 : 이상한 하루였어.

라이더37 : 꿈같은 일이 생겼고, 차라리 꿈이었으면 좋았을 일도 생겼어.

 

인절미 : 근데 왠지 행복해 보인다.

 

라이더37 : 어떻게 알았어? 나 지금.. 좀 행복하거든. 넌 진짜 나를 잘 아는 거 같아.

 

인절미 : 우리.. 언젠간 만날 수 있겠지?

 

음..

라이더37 :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어.

라이더37 : 우리 이미 알고 있는 사이는 아닐까? 혹은 한 번쯤 스친 적 있지 않을까?

 

인절미 : 아니.

인절미 : 내가 널 못 알아볼 리 없어.

 

맞아.

 

 

 

 

 

 

#

 

 

왜 우리가 사과해야 하는데?

 

하-

 

너, 너 늘 이런 식이었지.

 

 

 

하..

말이 안 통하긴 너나 저 언니나 마찬가지네.

죄송하다 한마디면 금방 끝날 일이었어.

너 처럼 입바른 소리 해봐야, 잔소리만 길어지고 괴롭힘은 더 심해지고.

잠깐 물러서면 생활이 더 편해지는 거 몰라?

 

그게 편해지는 거야?

눈치 보고, 연습도 제대로 못하고.

연습 경기라도 붙으면 일부로 져 줘야 되고, 그게 진짜 경기까지 가는 거 잖아, 그게 정말 편해?

 

그건 너 처럼 실력이 어중간할 때 해당되는 얘기지 난 아니야.

난 아니야.

독보적으로 잘해봐. 다들 밀어주고 싶어 안달이지.

 

어중간한 선수들은, 어떤 억울한 일을 겪어도, 입 닥쳐라?

 

 

내가 버틴 시간을 우습게 생각하지 마.

 

그래, 금메달리스트가 버틴 시간은.

나 같이 어중간한 선수들이 버틴 시간보다 훨씬 값어치 있겠지.

야. 노력에도 급이 있는 거 같다.

버티는 건 다 똑같은데.

내가, 있잖아.

너 진짜.., 좋아하고 동경했거든?

딱 그만큼, 이제 미워할 수 있을 거 같아.

 

바닥 청소는 너 혼자해라. 난 잘못한 게 없어서 못 하겠다.

 

 

 

 

 

 

 

#

 

 

무슨 일 있어?

 

아니야.

 

줄 거 있어.

나 때문에 망가졌잖아.

왜, 무슨 일인데.

 

...

 

응?

둘이 있을 때 행복하자며, 그게 일방적인 거면 별론데.

 

그럼 나한테, 앞뒤 상관없이 딱 한마디만 해 줄 수 있어?

 

무슨 말.

 

고유림이 잘못했네.

 

...

 

안 되는구나.

 

아니, 무슨 상황인지도..

 

 

-

 

 

나희도!

야, 나희도.

야, 뭐 이렇게 가-

 

나 오늘 진짜 거지같은 날이었다고.

그냥 빈말이라도 그게 그렇게 어려워?

난 항상 네 편이었던 거 같은데?

 

고유림이 잘못했네.

 

이 한마디가 네 기분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돼?

난 아니라고 생각하는데.

 

내가 펜싱을 왜 못하는지 지금 깨달았어.

펜싱에서 제일 중요한 게, 상대방과 거리 조절이거든?

지금 내가 그걸 못하네.

너무 많이 기대했다.

고유림한테든, 너한테든.

 

하-

 

 

 

 

 

#

 

 

내가 좋아하는 모든 사람들과, 거리 조절에 실패했어.

나, 그 애를 더 이상 좋아하지 못할 거 같아.

 

인절미 : 그 애가 잘못했네.

 

라이더37 : 오늘 그 말이 진짜 듣고 싶었는데.. 니가 해주네.

라이더37 : 그래도 너랑의 거리 조절은 성공인가 보다..

 

인절미 : 우리 사이는 거리가 없어. 그래서 조절할 필요도 없지.

 

라이더37 : 고마워 니가 있어서 너무 다행이야.

 

인절미 : 잊지마. 나는 언제나 니 편이야.

 

 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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